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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Said/Fragments of H

조각

by 하달리 2015. 12. 8.

1-0.

소녀는 먼지 냄새가나는 낡은 곰인형을 끌어당겨 안았다. 한시간 조금 모자른 시간을 어둠속에서 숨 죽이면 산타의 선물처럼 평안한 잠이 머리맡에 놓일지도 모른다고, 소녀는 구겨진 이불위로 지나가는 달그림지를 보며 생각했다. 


1-1.

"고통스러운기억은모두사라진다지나간시간은돌아오지않는다 고통스러운기억은모두사라진다지나간시간은돌아오지않는다 고통스러운기억은모두사라진다지나간시간은돌아오지않는다 고통스러운기억은모두사라진다지나간시간은돌아오지않는다 고통스러운기억은모두사라진다지나간시간은돌아오지않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악몽이 끝나지 않길래, 소녀는 그냥 악몽속의 괴물 역을 하나 맞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제 소녀는 더이상 악몽이 끝나지 않는것에 대해 신경쓰지않아도 되었습니다. 더이상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1-2.

가끔 소녀는 아무런 미동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작은 머리통에 가득 찬 생각을 세상은 알지 못했다. 소녀가 긴 고민을 끝내고 드디어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작은 머리통은 아무것도 담을수 없는 깨어진 병이 되어 있었다. 이거 하나만 기억해요. 그리고 절대 잊지 말아요. 당신은 나를 구원할수 없어요.



2.

우리는 모두 깊은 바닥에 숨겨놓은 검은 상자 하나가 있다. 그 상자는 그 무엇보다도 단단히 잠겨있지만, 열쇠 구멍 같은 것은 없다. 쉽게 들어올릴수 없는 무시무시한 무게이지만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 안에는 우리가 지금, 이곳에 존재하기에 피어오르는 모든 어두움이 담긴다. 그 상자는 우리안에 물리적으로 존재 하기도 하고, 개념으로만 존재하기도 한다. 그 상자는 무엇으로도 사라지지 않고 잊혀지지 않는다. 이 상자는 개개인의 삶에 대한 성찰이나 인격에 대한 개몽 여부와 상관 없이 존재하며, 그 상자를 바라보면서도 상자임을 인지하지 못할수 있고 상자임을 알면서도 그것의 존재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 상자는-

 

 

3.

잠이 오지않아 고개를 빼고 뒷뜰을 둘러보다가 새벽의 폭우가 내리는 것을 보았다. 창문 너머로 순식간에 쏟아진 비가 역시 순식간에 사라진다. 남는 것은 몇몇 예민한사람들의 지난밤에 느낀 선잠의 기억과 푹젖어버린 땅의 보기 싫은 물자죽 뿐이다.


 

4.

-X와 즐거운 기억이있나요?
-없어요.
-하나도요?

 

나는 다시 곰곰히생각하고 대답했다.

 

-행복한 기억은 있지만 그건 결국 x로 인해 파괴됐으니, 없는셈이죠.

 

나는 얘기 내내 울었지만 나와 서도 눈물이그치지않아 화장실에 숨어 한참을 소리내어 울었다. 시야를 가릴 정도의 빛이라면 공허를 몰아낼 수 있지 않냐는 너의 말은 대부분 틀리다. 그래서 문턱에서 벗어날 수없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는. 고통의 집, 슬픔의 집, 우리의 집에서.


 

5-0.

당신이 행복하다면, 난 좋아요. 날 조금씩 떼어내서 당신의 행복을 고이는거라면, 나는 좋아요. 소진되는 나를 한심해하고 연민할지몰라도. 그렇게라도 내가 당신을 위해 사용된다면, 난 슬퍼도 슬프지않고, 사라져도 사라지지않을테니까. 그래서, 나는 좋아요.

 

5-1

결국, 난 이 모순된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멀고 먼 바다로 쓸려 사라질겁니다.


5-2.

우리는 돌아오지 말았어야했어요. 돌아오지 말았어야했어요. 발이 닿지않는 검은바다위를 표류하던 우리,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그냥 버려졌어야했어요. 겁에질린 이안류를 타고 멀리멀리, 바디가 나를 던지는 곳으로, 심연의 푸른 구멍 속으로 사라져야 했어요.



6.

날 내버려둬
날 내버려두지마
나를 보지마
내게서 눈을 떼지마
나를 사랑해줘
나에게 관심갖지마
나의 모든것을 알아채줘
날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마
나의 욕망과 두려움과 공포를 부수고,
태에서부터 타고나고 성장의 시간만큼 곁들여지고 나이만큼 세공된 내 모든 개념과 가치를 깨뜨리고,
단단한 돌 안에 쳐박힌 내 영혼에 닿을때까지 나의 매끄럽고 빈큼없는 차가운 피부위에 정을 꽂아 망치질을 해대서,
이윽고 내 안에 있는 물방울만큼 미천하고 갓난 나뭇잎같이 연약한, 이 내 안에 너의 손을 넣을게 아니라면,
나를 사랑해도 나를 사랑하지마.
나를 봐도 나를 보지마.
네가 내 돌의 표면에 던졌던, 혹은 고이 놓아두었던 수많은 이야기를 네 숨소리의 강약까지 전부 기억하지만,
너의 눈물도 상처도 환멸도 기쁨도 경악도,
나의 표면에만 닿고 사라진다면,
나를 사랑하는 너도,
나의 사랑을 받는 너도,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니니까.



7.
그는, 몇번인가 일기장을 샀다.
새 일기장을 열어 하얀 표면에 힘을 꼭꼭 주어 글씨를 써내려가면서, 그 어느 대나무밭에서도 말하지 못한 말들을, 마음들
을 이곳에 고백해보겠노라고.
그렇게 비밀의 무게를 덜어내어 이곳에서만은 솔직한 사람이, 여기에서 만은, 입을 다물고 가슴을 여미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게 되어야지, 몇번을 생각하고 다짐하며 일기장을 샀다.
시간이 흐르고, 하얗고 노란 종이가 글자를 가득 채우고 노트의 좌측에 쌓여간다.
그러나 그 텅빈 책을 채운 수많은 이야기는 주인의 처음 바람과 달리 복잡한 암호로, 모호한 상징으로, 난해한 비유로, 점
점 더 많은것을 숨기고 감추어서 결국 일기의 주인마저 자신의 기억과 고백의 정체를 모르게 되어 버린다.
그렇게 혼자쓰는 일기에 조차 덜어내지 못한 비밀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져서 등을 펴고 똑바로 설 수조차 없게 되어질 무
렵,
일기의 주인은, 여러가지 색의 크레파스들이 정신없이 엉키고 겹쳐져 칠해진 스케치북의 종이처럼
혼란스러운 까만 색을 띈, 끈적이는 추억과 헝크러진 기억을 가진 사람이 된다.
그 사람의 검은 표정위를 그라타주하듯 열심히 긁어 낸들, 그 아래 어떤 색이 보일까.
그의 혼돈의 흑색은 그 어느 것도 담지 못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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